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남독군 교체 파동 (문단 편집) == 결과 == 3월 8일 왕인천이 하남성장에 취임했지만 하남국민대회와 하남성의회는 왕인천을 거부했다. 특히 하남국민대회는 3월 7일 전보를 보내 "왕인천이 도착하는 날이 바로 하남 인민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날이 될 것이다."라고 위협했으며 3월 7일 제5차 하남국민대회가 개최되어 왕인천의 성장 임명을 반대하고 하남성장을 하남 인민이 선거하겠다고 결의했다. 하지만 자오티는 안휘파를 너무 자극하지 않기 위해 왕인천 취임을 환영했다. 자오티의 왕인천 환영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군민분치는 인민이 가장 바라는 바로서, 만약 실행하지 않으면 장차 다른 사람에게 구실을 주게 되니 차라리 이번을 계기로 실시하여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는 편이 낫다. (...) 왕인천은 본래 서생으로 경력이 보잘 것 없어 이용할만하며, 하남인이기 때문에 외성인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에 왕인천은 하남성장에 취임할 수 있었다. 이후 자오티는 우페이푸가 정저우를 통과하며 70만원의 위로비를 요구하자 그 중 20만원만 제공하며 빨리 떠날 것을 요구했다. 우페이푸는 자오티가 왕인천의 성장 취임을 용인하고 자신을 빨리 하남에서 몰아내려는 것에 불만을 품었지만 환계 타도를 위해 일단은 그 불만을 접어두었다. 이후 자오티는 환계 타도를 위한 7성 동맹에 가입하여 [[안직전쟁]]에 참가하여 승리하였지만 이후 [[1차 직봉전쟁]]에서 환계와 접촉하여 우페이푸에게 대항하였다가 [[펑위샹]]의 공격으로 하남에서 쫓겨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